문장수 논설실장(공학박사, 기술사)
리우의 16일간 열기는 지구촌을 달궜다. 올림픽은 피 흘리지 않는 신사도의 전쟁이다. 아직도 감격의 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이 선하다. 이들 올림픽 승자는 카메라의 조명을 전 세계에 전달된다. 1만 5백여 선수가 열전을 펼친다. 306개의 금 매달을 놓고 “젊음이의 한마당 축제”에서 열정을 토해낸다. 경기장 박에서도 메달 경쟁이 치열하다. 나름대로 삶의 현장에서 가난, 병, 소외 받는 이들도, 나에게는 감격과 감동의 드라마로 가슴속 언저리에서 잔잔한 파장을 준다. 그 파장은 울리기도 하고 미소 짓게도 만든다. 삶의 경기에서 최종 우승자는 포기와 좌절하지 않는 우리 들이다.
우리는 각자의 여정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서 만들어 가는 살아 있는 신의 창조물이다. 잘 나가는 사람, 금 수저가 받는 메달보다도 흙 수저가 받는 메달이야말로 순금가치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개막식도 장관이었다. 올림픽의 개막식은 지구촌을 쌈바 열풍과 율동으로 들썩이게 만든다. 개최국은 꿈의 비전을 특유의 춤으로 문화 이미지를 나름대로 다양한 첨단기술까지 동원하고 있다. 직접 개막식에 참여할 수 없는 30억 지구인이 하나가 되어 그 환희와 감격을 물씬 맛보도록 현장감 있게 중계한다. 나도 설레임의 나래를 펴고 축제마당으로 날개 짓을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서 경기 중에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TV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뛰고, 달리고, 찌르고, 쏘고, 때리고 이내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펄펄 끓고 만다. 열이나니 숯불처럼 달구어진다.
펜싱경기를 보며, 의외의 성과를 보여준 투혼과 정신력은 많은 한국선수와 TV를 통해 응원하는 나에게도 수면의 잔잔한 물결처럼 전해오는 파장이 점점 크게 밀려온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긍정의 힘과 자기최면을 통해 부단하게, 숨 고를 사이도 없이 용수철처럼 튀어 상대에게 달려들어 찌르는 모습은 두 손에 땀이 나게 한다. 득점할 때마다 주먹을 불끈 거리게 만든다.
양궁과 사격에서 상대선수와 숨 막히는 신경전을 넘어서야 한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는 혼자만의 외로운 마인드 콘트롤만이 승자로서 영광의 시상대로 안내 받을 수 있다.
유도와 레슬링, 태권도의 격투기는 나도 모르게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몸살이 날 지경에 이른다. 축구경기는 개인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그라운드의 11명선수와 감독, 코치가 하나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전광석화처럼 움직여야만 한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몸이 움직인다. 골을 넣은 순간은 지구촌의 함성이 나를 전율로 이끈다. 박수와 환호가 절로 나온다.
개인이나 단체경기에서 1, 2, 3등에게 금, 은, 동 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이렇듯 일궈낸 결실은 “땀은 거짓이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다. 감격과 감동의 순간들이 시상대를 울린다. 눈물이 선수자신들도 모르게 흐른다. 우리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땐 괜스레 나도 가슴이 벅차 온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선수와 함께 나도 입시울이 움직거린다. 금메달을 살포시 입에 깨물어 하이얀 이를 수줍은 듯 내민다.
이 한 순간을 위한 4년간의 땀과 힘들고 외로움을 남모르게 겪었던 고통의 시간들이 찰나(刹那)처럼 스쳐간다. 선수들은 제일 먼저 가족의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품안을 생각한다. 한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 지나간다. TV화면은 영광의 순간순간의 장면들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나는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도 어느 순간 눈물이 난다. 극장에 가서도 그러하다. 내 눈물샘은 깃털 같은 터치만 해도 봉숭아 씨앗처럼 터져버리고 만다.
그러나 메달권에서 멀어진 선수들의 애끓고 안타까운 사연도 선수들 수(數)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그렇다고 결코 소홀히 지나칠 수는 없다. 메달 수여의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고 참가한 선수를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저마다 나름대로 피나는 훈련과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쟁을 통과하여 리우까지 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만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시간의 족적에서 보면 모두가 우승자들이다.
이제 올림픽의 성화가 꺼지며 어둠속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막을 내렸다. 얼마동안은 영광의 순간을 되새김질 하듯 되돌아 볼 수도 있겠지만 한구석은 휑하니 허전하다. 한 동안 경쟁의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들은 첫눈처럼 녹아 흘러 버린다.
매달을 입에 문 이긴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모두가 또 다시 다음 우정의 대결을 기대하면서 결전을 다짐한다. 그래서 4년 후의 희망은 아름다운 것이다. 열병처럼 빤짝이다가 스스럼없이 사라져가 버리는 유성처럼,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암탁이 알을 보듬듯 하기 때문이다.
메달은 올림픽경기에서만 목에 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생활 주변에도 많은 메달 리스트들이 수두룩하다. 자기 스스로에게 주는 자긍(自矜)의 메달도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적 상황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부부간에 주는 사랑의 메달이다. 자식은 존재 자체가 사랑의 메달이다. 아들, 딸을 일컬어 금, 은, 동 색깔로 구분해서 불리어지는 메달도 있다. 나는 아들만 둘이라서 언필칭(言必稱) 목(木) 메달이라고 하는 이가 있어도 좋다. 공동체나 단체, 나라가 주는 메달, 국제사회가 지구촌 사람에게 주는 메달 등 종류도 많고 가지 수(數)도 다양하다.
그러나 정정당당하지 못한 메달이나 메달 획득에 부정이나 부패가 있었다면 선수는 물론이고 주변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 선수가 단순히 욕심의 틀에만 얽매이다 보면 메달의 울타리 안에 갇혀 불행을 낳기도 한다. 내 삶도 나만의 욕심에 휩 쌓여 보이지 않는 틀 안에 갇혀 허우적거릴지 모른다.
금, 은, 동 메달은 눈에 잘 보일지 몰라도 감사와 사랑의 메달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빛깔은 아름답지만 보이지 않는 가치는 보이는 것보다 더 빛나고 값지다. 이런 값진 메달을 향해 쉬임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은 세상을 아름답고 살기 좋게 만든다.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생명력이 살아 숨 쉬기 때문이다.
심판의 날에 받을 수 있는 “구원의 메달”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승에서 나들이 하며 사는 동안에 화초를 가꾸듯 보살피고 다듬고 다잡아야 할 필연의 업보는 “감사와 기도, 사랑” 뿐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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