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태 (安元泰) 박사
한국국립공원진흥회 회장
안원태 박사는 광주 서중, 광주고, 서울대문리대, 국민대대학원(경제학박사). 한국일보 기자. 한국산업개발연구원 부원장. 한국경제사회연구원 원장. 국토환경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이왕조의 역대 왕들은「조(祖)」또는「종(宗)」의 호칭(廟號)을 받았다. 27명의 역대 왕 가운데 태조(太祖), 세조(世祖), 선조(宣祖), 인조(仁祖), 영조(英祖), 정조(正祖), 순조(純祖) 등 7명의 왕은「조(祖)」의 칭호를 받았고, 나머지 20명은「종(宗)」의 칭호를 받았다.
「조(祖)」를 받은 왕들은 임진왜란을 맞은 선조와 아버지에 이어 외척정치의 시조 김조순(金祖淳)에 맞서 왕권정치 수호를 이루려던 순조를 제외하면, 훌륭한 어른 대접 받는 20대를 지나 자기주장이 뚜렷한 나이에 등극했다. 대부분이 10대에 왕이 된「종(宗)」의 경우들과는 달랐다.「종(宗)」의 왕들은 권신들에 휘둘려 ‘삼가 아룀,’ ‘통촉’, ‘성은 망극’에 알짜 권한들 내어 맡긴 통치였으나,「조(祖)」의 왕들은 신하들을 부리는 왕권 통치를 펼쳤거나 노력한 경향이다.
개국공신에 강력한 왕권주의자, 스스로 왕관을 차지한 태종도 권신들 작당에는 견디지 못한 형국이었다. 아버지 태조의 양위를 빌미로, 후비 소생 어린 왕자를 세자로 책봉한 권신들에 맞선 다툼 끝에 형을 왕으로 추대하고, 2년 만에 물려받은 왕권 쟁취의 업보로 태상왕인 아버지의 마음 돌리기를 첫째로 삼았다.
계비 소생 어린왕자의 왕위계승을 획책하거나, 무척은 유약하고 만만한 정종에 기대했던 권신들은 태상왕을 핑계 대며 무제한 권력 지키기에 버둥댔다. 태종은 권신들을 회유하고 비위를 맞추느라 자신의 전문인 국방 이외에는, 외척이나 왕족의 정치개입을 제한하는 등 제도정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국정을 권신들에게 맡겼다.
그 뿐인가 재기 넘치고 권신들의 행태에 차가운 비아냥 눈빛을 보인 맏이 양녕대군을 밀어내고, 순둥이 충녕대군을 왕위에 올리는 신권(臣權)지속의 기반을 허용하고 말았다. 현군으로 불리는 세종도 두 형들을 제끼고 왕위에 오르기까지 외숙과 처가를 동원한 로비로 왕위에 올랐기에, 그 보상으로 그 때로는 별 볼일 없는 문화 과학 분야에만 전념하고 국가 경영은 아버지의 유신들에게 맡겨 권신 만발의 사회를 이루게 했다.
세종은 맏이가 아니면서 왕이 된 어려움을 느꼈던지, 장남 문종이 병약, 무능한 반면, 작은아들 수양의 유능을 알면서도 권신들 개입 빌미를 막고자 장자승계로 문종을 왕위에 앉혔다. 그 유언 탓인지 단명한 문종도 연부역강한 동생 수양을 두고 어린 단종에게 왕위를 넘겨, 세종때부터의 권신들이 어린아이 대리고 멋대로 휘두르는 신권(臣權)정치의 재미를 즐겨, 이씨왕조는 사실상 망국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사육신 생육신의 역사소설 비극을 낳게 했다. 세종의 고명유신이면서도 단종복위에 함께하지 않아 변절자로 몰린 신숙주 등 일부 집현전학사들은 왕권수호 정신이 투철했던 왕권에의 충신이였을 터다. 실로 世祖는 개국 이후 겨우 60년만에 권신(權臣)들의 나라가 되어버린 이씨왕조를 다시 왕의 나라로 복권한 제2의 건국을 한 것이다.
「조(祖)」의 왕 가운데 유일하게 10대(15세)에 등극한 선조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신권에 맡겨뒀다가는 나라가 멸망하겠다는 것을 절감했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 권신들이 기죽은 사이에 자기정치로 왕권을 되찾은 셈이다. 인조도 광해군의 포악정치에 시달린 권신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으나, 이미 식견이 탄탄한 20대 후반(28세)의 경륜가였고,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왕권 중심의 책임정치를 편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조는 그 생모의 가여운 내력에다가 사회적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가 있었고, 이미 30대에 등극하여 온갖 물정을 알고 있었던 데에다, 재위 52년의 중반 이후에는 자신이 원로급에 해당하여 확고한 왕권 정치를 펼 수 있었다.
정조도 20대중반에 등극한 데에다 할아버지 영조의 단련을 많이 받아 성숙했기에 개혁군주로 알려질 만치 왕권을 강화하여, 족벌 권신들의 암살모의가 전해 올 정도로 강력한 왕권 통치자였다. 정조와 함께 주목 되는 것, 사도세자로 장왕에 추존된 정조의 아버지가 사실은 일찍부터 신권정치에 큰 반발을 보여 권신들의 모함으로 불행한 결과를 만났다. 이것이 정조의 왕권 도학정치 추구를 부추겼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조광조가 대타로 희생의 화살을 맞은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순조는 19세기 최초의 왕인 데 세도정치의 원조인 외척 김조순과 맞서 왕권을 강화하고 직접 민정을 살피며 친위군대를 양성하는 등 아버지 정조의 개혁 정치를 계승하려 하였다. 끝내 어려워지자 세자에게 대리 섭정을 시켜 강행하려 했으나 열성을 보이던 세자가 죽자 다시 집정하였지만, 세도정치를 막는데 실패 하였다. 이 순조는 당초 묘호(廟號)가 순종이었으나 철종 때에 순조로 개칭하여「조(祖)」반열에 올랐다. 26대 고종의 아들인 이조 마지막 27대왕 순종(융희황제)과는 물론 다르다.
왕권과 신권의 다툼과 관련하여 10대 연산군(18세 등극)과 15대 광해군(33세 등극)의 경우도 초기에는 능력 있는 왕으로 평가 되었다. 연산군은 그 어머니의 참변을 알게 된 이후, 그동안 알랑대던 신하들에 대한의 배신감에서 탈선을 시작했고, 광해군의 경우에는 영명한 왕으로 인정받다가 재위 10년 이후 왕권정치가 자리잡혀가자 권신들과의 세 싸움에서 밀려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이미 신권 세도 정치의 병폐가 진해서 광해군을 제거한 반정으로 들어선 仁祖도 추대세력인 새로운 신권세력에 눌려 싸이지 않고, 왕권강화에 나서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기 할 일은 세종의 극진한 애호를 받던 신숙주가 수양대군 편에 선 것을 변절로 치기도 한다. 사실은 국제 감각과 비전을 지녔던 당대 최고 엘리트였던 그로서는, 권신들이 희미하게 표시해 둔 자리에 어린 단종이 진한 점을 찍는 황표낙점 농단 정치에 반발한다. 수양대군의 명나라 사은사에 종사관으로 함께 하면서 왕권확립의 이념적 동지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씨 나라 왕권을 농락하며 부귀를 독차지하는 권신들 행태에 강력한 대타 신왕을 기대했지 않았을까? 물론 신숙주는 수양의 구테타인 계유정난 때에는 외직에 나가 있어 개입하진 않았다는 알리바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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