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문장수(공학박사, 기술사)
1975년 일본의 문예춘추(文藝春秋) 2월호에 발표 된 논문「일본의 자살」이 37년 만인 2012년 3월호에 초록으로 다시 실렸다. 일본의 보수․진보성향인 아사히신문은 2012년 1월10일자 1면에 「미래사회에 책임을 지자」는 표제와「일본의 자살이 걱정 된다」는 부제의 논설을 실었다.
「일본의 자살」이란 논문은 일본의 각 분야별로 일군(一群)의 지식인 석학 그룹이 모여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제문명(諸文明)의 역사를 분석한 결과이다. 그 요지는 “모든 국가가 외적이 아닌 내부 요인 때문에 스스로 붕괴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가자살”의 공통적인 내용은 극단의 이기주의와 포퓰리즘(大衆迎合)을 지적하고 있다. 국민이 작은 이익만을 추종하고 지배 엘리트들은 대중에 영합할 때 그 나라는 결국 쇠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에 없이 일본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먼저 로마제국의 쇠락 원인이 “빵과 서커스”로 축약된다. 로마제국은 번영을 구가하면서도 로마 시민은 책임과 의무를 잊은 “도덕적 유민(遊民)”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은 대지주와 정치인에게 몰려가 “빵”을 요구했다. 정치인들은 환심을 사려고 무상복지라는 “공짜 빵”을 주었다. 빵을 보장받은 시민들이 무료해 하자 지배층은 “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는 “서커스”까지 제공했다.
AD1세기 로마 클라디우스 황제 시대 콜로세움(원형경기장)에서는 격투기(格鬪技) 같은 구경거리가 1년에 93회였다. AD4세기엔 무려 1년의 48%인 175일 동안 서커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짝퉁민주주의”라 한다. 짝퉁민주주의를 병리진단 용어로 “짝퉁민주주의 증후군”이라 하여 6가지의 증후군으로 나누고 있다.
그 제1증후군은 “비경험 과학적 성격”이다. 종교적 신앙과 같이 정치적인 경우에도 우리를「믿으라, 그러면 구원(빵)을 받으리라」는 리더십은 아이러니 한 것이다.
제2증후군은 “획일적, 일원적, 전체주의적 성향”이다. 이는 다수결 원칙이라는 그릇된 인식과 방법으로 극히 한정된 결정을 한다. 수단이나 편법으로 다수결을 무기로 교묘히 그 본질을 전용하는 것 등이다.
제3증후군은 “권리의 일면적 강조 방식”에 있다. 일본에서는 모든 기회에「권리」가 소리높이 외쳐대지만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의 “의무와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별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4증후군은 “비판과 반대뿐이고 건설적인 제안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개인이나 사회의 실체를 흠잡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제5증후군은 “엘리트 부정의 대중영합적인 성격”이다. 민주주의는 엘리트나 리더십을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보다 무거운 책임을 더해 주는 것이다. 전문가를 부정하고 리더십을 부정하려면 그 결과는 어쩌지도 못할 우민정치(Ochlocracy)의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끝으로 제6증후군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비용관념의 결여”이다. 거의 모든 사회문제, 정치문제의 해결에는 반드시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 자칫 위선적으로 대중의 인기만 얻으려고 한다면 국가는 파산하고 사회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Rome가 풍요의 보상 탓에 방종과 정신적 타락에 빠지고 도시화와 대중사회화상황의 출현으로「빵과 서커스」에 자율정신을 잃고 이기주의와 불평등주의와 자만 속에서 영혼의 내면과 사회 밑바닥부터 부패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제2의 Rome제국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사회가 거대도시의 대중사회화상황의 복판에서「빵과 서커스」의「요구관철」「투쟁승리」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이로인해 영혼의 내면과 사회의 밑바닥부터 쇠약해지고 부패해 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문명들의 몰락의 역사를 통해서 얻은 몇 가지 절실한 교훈이 지금에 필요하다.
제1교훈은 국민이 좁은 이기적인 욕구나 추구에 몰두하여 스스로의 이기주의의 자제를 잊을 때 사회경제는 자멸해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소비자이건 근로자이건 또는 정치가나 경영자라도 “이기적 충동에 밀려나지 않고 자기억제를 하며 무언가 타협점”을 찾아야만 한다.
제2교훈은 국제적이건 국내적이건 국민 스스로의 일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자립의 정신과 기개를 잃을 때 그 국가 사회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제3교훈은 엘리트가 정신적 귀족주의를 잃고 대중영합주의로 달릴 때 그 나라는 멸망한다는 사실이다. 정치가나 학자나 사업가나 또는 노동운동이건 모든 지도자는 지도자라는 데에 보람과 책임감을 지니고,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해야 할 말은 하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제4교훈은 윗세대는 쓸데없이 아랫세대의 비위를 맞추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는 윗세대와의 다툼과 절차탁마(切磋琢磨) 속에서 비로소 튼실하게 성장해가는 것이다.
몰락의 역사가 주는 제5교훈은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이란 것이 결코 임금이나 연금의 많고 적음, 물량의 넉넉함만으로 셈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이 욕망의 비대화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인간은 항상 불평불만 덩어리가 되고, 욕구불만에 시달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은 물질적으로는 눈부신 재건을 이루어낸 것이 확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거의 재건되지 못했다. 도덕은 황폐하고 인심은 메말라서 일본인의 혼은 병들었다. 일본은 그 개성을 잃어버린 채 그저 망연히 서 있을 뿐이다.
동서고금을 통한 수천년 동안의 국가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내부적 요인으로 나라가 쇠락해 지고, 이웃 힘 있는 국가가 마지못해 먹어치워 나라가 망해 버리는 것을 국가자살”이라고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한 국가가 기개를 잃고 자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 하는 순간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증후로 보아 일본사회 내부에 강력한 자멸작용의 메카니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메카니즘을 제거하지 못하면 일본은 자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도 미래는 없고 현재만 있는 것 같다. 미래를 준비하며 국가 전략을 짜야할 정치관료 엘리트들은 인기와 자신만을 위한 탐욕스런 이기주의의 팽창과 대중적 야합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그 징후를 볼 수 있다.
일본의 현실과 미래를 볼 때 지금 일본은 중차대한 시간의 축에 놓여있다. 그래도 우리 한국은 결단코 “일본의 자살”을 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가까운 이웃 나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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