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모 교수 (농학박사)
르완다대학교 농업대학
마지막이란 의미는 매우 감상적일 때가 많다. 시간, 공간, 사물 따위에서 마지막 한계를 말하는 마지막이란 의미로 나의 아프리카 르완다 생활을 마감하기 전 이곳 꿈이 있는 대학생들에게 2014년 12월 15일 마지막 수업을 가졌던 내게는 더욱 그러했다.
내 임무의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가장 먼저 중학교 때 읽었던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알퐁스도테의 “마지막 수업”이 생각났다. 프랑스가 독일과에 전쟁에서 패하자 프랑스어로 수업을 못하게 함으로서 프랑스 선생과 제자들의 감정을 그린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2010년에 이 나라 르완다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KOICA 봉사단에 지원하였지만, 나는 이 나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한 너무나 무지한 나였던 것 같았다. 어쩌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도하시겠지 하며 봉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봉사단에 지원 선발되어 2개월간 훈련 후 르완다 농업대학(UR-CAVM)에서 대학생들을 지도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학생들과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3-4살의 어린 나이에『제노사이드라는 대량학살』속에서 살아남은 젊은이들이다. 학생들 하나하나가 갖가지 슬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학살은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으로 약 3개월 동안에 거의 100만 명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매년 4월 7일이 되면 『잊지 말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 당시 기억들을 상기하자는 대대적인 행사를 거의 100일 동안 거행한다. 이곳 르완다 사람들은 20년 전의 그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악몽을 기억하자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세계 지도 정보기관 자료에 의하면 지구상에 237개국이 있다고 한다. 그 중 르완다는 최빈국으로 분류돼 있어서 많은 나라의 원조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고 있지만 경제적 도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라이다. 실제로 월드뱅크 등 국가별 각종 지표를 발표하는 결과를 보면 희망적인 나라임에 틀림없는 나라이다.
어느 나라든 학생들의 정신수준을 보면 그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대학생들은 그 사회의 엘리트 그룹이라고 인식되며 그 나라의 장래를 가늠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내가 이곳 학생들에게 강의하며 느낀 점들은 너무 부정적 인식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시간 개념이 너무 약하였다.
르완다에 오기 전 여러 개발도상국들에서 경험한 공통점이라고 느꼈지만, 이곳 대학생들의 시간관념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수업시간에 늦는 것은 더욱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생들 중 강의 시간에 맞춰서 오는 학생들은 약 10퍼센트도 안되었다. 수업에 30분 늦는 것은 일상이며 한 시간 이상 늦게 오는 학생들도 상당한 숫자이다. 수업에 늦게 들어와서도 당당하고 떳떳하다. 수업에 늦는 것이 무슨 대수냐는 태도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이 수업을 진행하는 프로젝터 스크린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것이 예의에 벗어난다는 개념도 없다. 강의실에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에 의해 설명을 중단해야하는 지경이 너무나 잦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시간관념을 가르쳐주는 것이 다른 어느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 엄수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늦는 학생들에게 곧바로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고 학생들 앞에 10분간 씩 서 있게 하는 체벌을 가하면서까지 지도하였다. 대부분 학교 기숙사나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며 생활하기 때문에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기숙하고 있어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내가 가하는 체벌에 대해 반항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 1분 만 늦어도 99명의 학생에게는 99분 즉 1시간 반 이상의 시간손실이며, 1시간 늦으면 4일 이상의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라고 강조하며 가르쳤다. 이런 결과인지 매 학기마다 학생들과 나와의 시간엄수 투쟁 결과 학기 말에는 약 80퍼센트까지는 향상시킬 수 있었고, 20퍼센트 정도의 학생들에게는 도저히 내 지도력이 미치지 않았다.
여전히 늦게 오는 학생들은 늦음에 따른 아무런 감정이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늦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년 지도하는 학생들이 바뀌기 때문에 매 학기마다 반복하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내가 지도한 시간개념 교육 덕분에 학생들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기에는 한참 미흡했고 오히려 내가 실패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코리안 타임”이란 유행어가 생각났다.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간개념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란 생각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대학교 교수들의 월급이 약 500불 정도인데, 학생들에게 졸업 후 취직을 하면 희망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5백이나 8백 불 정도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자기 본분을 모르는 소치이고 그저 대학을 졸업한 계급으로 생각하며 어떤 일이든 자기 스스로 하지 않고 남을 부리는 계급쯤으로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학교에서 지급하는 장학제도가 우수한 학생을 상대로 지급하지 않고 가난한 학생들 중심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것이 오히려 등록금 걱정 없고 떳떳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학교 경내에서 면학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온통 종교집단들의 모임인양 종교행사에 열중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종교적 부흥회 같은 행사로 확성기에 의한 소음이 심한데도 학업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항의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캠퍼스 안이나 밖에서 영어든 컴퓨터든 방과 후 노력의 흔적들을 볼 수가 없다.
나는 이곳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진지하게 평소 내가 생각하고 젊은이들에게 잔소리(?) 하던 내용들을 간추려서 내가 이곳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예들을 들어가면서 약 2시간 동안 르완다 농업대학 산림보호학과 2학년 학생 99명을 대상으로 한 나의 마지막 수업은 내게 매우 특별했다.
이제 이들을 위해 나의 마지막 수업에서 안타까운 내 마음은 전도유망하다고 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Invisible Value)에 대해 특별 강의를 했다. “건강”해야 돈을 벌지는 못해도 낭비는 하지 않을 수 있고, 여러분들의 5년 전 생활과 앞으로 5년 후의 일을 생각하며 “시간”을 아껴 목표를 위해 정진할 것을 강조했다.
“꿈(희망, 바램)”을 가지고 지금 당장 여러분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출발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용솟음치는 새로운 에너지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할 수 있으며, “사랑”과 “친절”이야말로 현금보다 더 가치 있는 자본이며, “신용”과 “정직성”이야말로 여러분들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경험”과 “정보수집”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거듭되는 실패를 막을 수 있고, “용기”를 가지고 앞서 얘기한 모든 것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으며,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으므로 늦기 전에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끝으로 “나는 여러분들과 르완다를 사랑했노라”하면서 4년 반 동안 르완다 농업대학에서의 교육임무를 마무리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