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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7년09월04일 16시36분 ]

문장수 논설 실장

(공학박사, 기술사, 수필가)

 

37주년이 되었다. 19805월 광주 민중항쟁을 제3자의 눈으로 보고 기록한 실화 영화가 택시 운전사이다. 1200만 관객을 육박하고 있다.

 

독일기자 힌츠페터는 독일 공영방송 ARD 산하 일본 특파원이었다. 외부 세계에 뜬소문으로 알려진 한국소식에 뭔가 낌새가 있음을 직감하고 1980519일 한국에 도착했다. 광주의 상황을 언론통제로 전혀 알지도 알 수도 없었던 택시운전사는 어린 딸과 기거하며 밀린 월세 10만원을 갚기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일해야 하는 당시 우리사회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몰던 김사복씨는 외국인 손님이 광주 왕복에 10만원 받는다는 극적인 상황에서 광주로 향한다.

 

사느냐 죽느냐의 갈등 속에 광주행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사복의 현실적 갈등을 간파한 파란 눈 외국기자 힌츠페터"노 광주 ? 노 머니 !"를 외친다. 계엄령 상황인 광주는 전화는 끊기고, 광주를 앞둔 지점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무장 계엄군으로 모두 막힌 상황에서 샛길을 뚫고 극적으로 진입하게 된다.

 

광주에 들어오자 사태가 심상치 않고 살벌함을 느낀 사복은 돈이고 뭐고 광주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제3자적 관망에서 몰래 빠져나가게 된다. 광주를 벗어난 인근지역까지도 언론통제로 깜깜무소식인 주민과 광주에서 본 험악한 상황에서 보통사람이면 가질 수 있는 심경변화를 한다. 왜 이곳 광주에 외국인 기자가 오게 된 것임을 생각하며 다시 광주로 들어가 점차 필연적 상황에서 기자를 돕게 된다.

 

계엄군이 자행한 무차별 학살과 광주시민의 투쟁을 기록한 힌츠페터는 신군부의 철통단속을 피하기 위해 필름을 고급선물 과자 통에 숨겨 007작전하듯 광주에서 탈출한다. 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일등석을 이용해 일본까지 직접 필름을 가져가 5월의 광주 아픔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스크린에 묘사된 그날의 비극적 참상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되어 울고, 웃고, 분노하고, 두려워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주저하다가 또 용기 내는 그 얼굴들이 지금도 되살아난다.

 

1995년에 중동건설근로자로 일하다 귀국하여 보니, 그때만 해도 5.18에 관련된 이야기를 내놓고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성당 지하실에서 숨죽이며 그때의 5.18 항쟁기록 동영상을 볼 수가 있었다. 외신이 보도한 기록과 외국특파원이나 외국인 신부님들이 기록한 사실기록물이다.

 

최근 기무사의 자료에 의하면 당시 “133만발의 실탄이 지급되었고 이중 51만발을 발사했다는 사실과 일반 소총뿐만이 아니라 대량살육을 위한 기관총, 수류탄, 클레어모어, 헬기기총사격, 공군전폭기의 출동대기라는 실로 납득하기 어려운 가공할 충격적인 무서운 일이다.

 

지금도 왜곡되고 가공되는 가짜뉴스가 나돌아 다니고 있어 가슴이 미어져온다.먼저 북한인민군 1개 대대가 투입했다는 기막힌 거짓말이다. 미국정보당국에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북한군 투입과 연계하여 북한군이 소지한 AK소총이 다량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총은 발사시에 소리가 특이하기 때문에 누구나 알 수 있다. 또한 국방부 공식조사에서 1건도 그런 것이 언급 되지 않았던 사실이다.

 

발포건에 대해 시민이 무장하여 진압군이 자위적 차원에서 발포했다는 논리이다. 2007 국방부 관련조사 결과, 51916:5011공수여단, 63대대 작전장교 차00대위가 M16을 발포하여 JD고 김 모 군이 총상과 2113:00시에 11공수여단이 시위부대 발포로 최대 사상자 발생하게 된 이후에 시위대가 스스로 지키고자하여 무장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광주의 항쟁은 광주의 역사상 가장 슬픈 아픔의 역사이다.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이라는 광주 문제 해결의 5가지 원칙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많기 때문이며, 촛불혁명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힌츠페터는 취재기에서 "나는 이 사건이 평화와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싸웠던 작은 도시 광주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인에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독일기자 힌츠페터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취재활동은 1997년 출간된 "5.18 특파원 리포트"를 통해 세상에 또 한 번 알려졌다. 광주의 아픔을 세상에 알릴 기억 속에 광주에 묻히기를 소망했던 위르겐 힌츠페터(Jurgen Hinzpeter, 1937 ~2016) 기자의 유품이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문제인 대통령은 새 정부는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고 관련 자료의 폐기를 막는 등 5·18 진상 규명에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어 "광주정신은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음잊지 않고 5·18을 함께 기억하자고 했다.

 

그러나 5·18을 보통의 택시기사로만 여기고 발포명령의 원흉들을 추종하는 눈멀고 귀먹고 양심까지도 벗어던져버리고지금까지도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세력들은 누구일까? 차라리 이 땅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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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요금 유감 (2017-08-16 06: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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