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모드 | 로그인 | 회원가입
2020년10월24일sat
 
티커뉴스
OFF
뉴스홈 > 뉴스 > 칼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등록날짜 [ 2017년08월16일 06시44분 ]

논설 실장 문 장 수

(공학박사, 기술사, 수필가)

 

미국 안토니오 무치는 1871년에 전화기를 발명 임시 특허를 냈지만 돈이 없어 정식 특허를 얻지 못했으나 그레이엄 벨이 1876년에 특허를 얻게 되었다. 또 발명가 엘리샤 그레이는 벨과 같은 날 전화기 특허를 신청했지만, 벨이 1시간 더 빨리 출원하는 바람에 아쉽게 특허권을 놓쳤다.

 

한국은 70-80년대 흑색과 백색전화기 가입하는데 신청비와 서비스에 큰 차별이 있었다. 44년 전 훔친 550원짜리 기차표 한 장, 1000배인 55만원을 갚은 60대 여성의 양심고백은 우리사회 던지는 파장이 사뭇 크다.

1846년 영국에서 나팔모양의 확성기에 압축공기를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기적(汽笛) 장치를 만들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먼 곳에라는(tel)()”이라는(phon)의 합성어인텔레폰(telephon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는 미국에서 처음 자동교환기가 개통된 지 43년 만에 도입되었다. 1896년에 서울인천 간에 전화의 개통으로 고종이 사형집행정지를 명하여 김구(金九)선생의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수동식 전화기는 핸들을 돌려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 준다. 자동식 전화기는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이며, 교환기에 상대방의 번호를 다이얼의 숫자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걸림 쇠가 있는 곳까지 돌렸다가 놓으면, 다이얼이 되돌아오는 사이에 숫자의 수만큼 전기회로에 연결된다. 지금에야 넘쳐나는 것이 휴대폰이고 국민 한 사람당 한대씩 개인무전기를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70년대는 전화기가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던 시절이다. 당시 전화기는 백색전화와 흑색전화로 구분 되었는데 백색전화는 개인소유로 되어있어 부자의 상징으로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재산목록 중 하나로 비쌌다. 반면 흑색전화는 모든 소유가 당시 전신전화국에 귀속되어 있었으며 반납시 보증금을 되돌려 받는데 지역마다 보증금액이 달랐다.

 

전화의 수효는 많은 반면 시설이 턱없이 모자라던 시절 백색전화기를 신청을 하면 순위별로 배정을 한 후 남는 수효를 추첨하여 일반에게 배정 하였다. 배정을 받으면 그야말로 축재의 분위기로 아파트 분양 당첨 된 것만큼이나 인기였다.

 

해외에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향수에 젖어 고국의 가족에게 종종 전화를 하게 된다. 그러나 70-80년대에는 국내 전화사정이 여의치 않아 통화하기가 쉽지 않다. 전화국에서 국제전화를 신청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서울과 연결이 되면 지방으로 연결이 확인되어야만 해당 전화기 박스로 가서 통화를 한다. 전화비도 비싸서 전보 치듯 미리 메모하여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끊어야 한다. 한 통화가 3분인데 1초만 초과해도 2통화가 되기에 시계를 옆에 두고 2통화를 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국제전화나 시외전화를 하곤 했었다.

 

중동에서는 주로 국제전화국에서도 하지만 공중전화박스에서 동전을 집어넣고 다이얼을 돌려 신호음이 가고 상대가 수화기를 들면 동전이 올려놓기 바쁘게 떨어진다. 동전이 없으면 통화는 자동으로 끊어진다. 동전 먹는 하마라고나 할까? 몇 마디 좀 하면 금방 동전이 바닥난다. 한손으로는 연방 동전을 집어넣으면서 통화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아뿔싸~! 이런 일들이 있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처사라고 생각된다. 동전이 너무 빨리 떨어지기에, 동전의 맨 윗부분에 구멍을 뚫고 가는 코일 선으로 묶어 동전이 떨어지지 않게 한손으로 코일 선을 움켜잡고 전화를 하면 동전이 떨어지지 않고 통화를 계속하게 된다.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낯 뜨거운 일이 아닌가 싶다. 국내에서도 그랬지만, 동전 크기와 비슷하게 철판으로 유사 동전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사우디는 전화 사업이 당시 한국보다 월등 앞서 있기에 지방의 조그만 구멍가게나 개인집에도 전자식 전화기가 일반화 되어 있었다. 구멍가게에서 몇 푼어치 물건을 사고는 전화 한번 사용해도 되느냐고 손짓 발짓해가며 승낙을 얻는다.

 

몇 번 돌리는 척하다가는 한국으로 전화를 건다. 한두 번은 그럴듯한 영웅담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런 뒤 한두 달 후 소문을 들으면 전화료가 엄청나게 나오게 되어 한국 사람이 전화를 사용하려고 하면 절대 거절이라니 원, 이런 국제적 망신이 어디 있을까? 가끔 현장 사무실에서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한국으로 전화를 한 일들이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 요금청구서에 찍힌 서울전화번호를 추적하여 통화요금을 토해내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는 15세 이상 한국 체류 외국인이 137만 명이고, 98만 명이 경제활동인구이며 93만 명이 근로에 종사한다. 100만 명 이상의 제3국 근로자에 대한 사건사고들도 많다. 중동건설 당시 연간 10만 명 이상의 우리근로자들이 중동에서 근무했으니 많은 사건들이 있음직도 하다.

 

44년 전 여고 시절(경북 김천) 통학하던 중, 역무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550원짜리 정기권 한 장을 더 가져갔다. 550원짜리 기차표의 1000배인 55만원을 갚은 60대 여성이 있다. 이 분은 "그 일이 너무 후회스럽고 부끄러웠으며 오랫동안 양심에 가책으로 남아 용기를 내 역을 방문했다""1000배로 갚아도 모자라겠지만 지금이라도 갚을 수 있어 다행이고 죄송하다"고 양심고백을 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했다. 어찌 죄 없는 자가 있을 것인가 마는 1,000배를 지불하며 용서를 청했다는 사연은 각박한 우리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과거의 잘못한 값을 치르기 위해 사회봉사나 거액을 무기명으로 기부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여유와 풍족함을 누리지만, 당시에는 분명 도둑질하듯 전화기를 도용한 사람들은 있었으나 사죄하는 이는 아직도 없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이제라도 우리들 중의 잘못된 행위로 피해를 입은 순박한 분들에게 용서와 사죄를 대신하여 드린다.

 

올려 0 내려 0
대기뉴스이거나 송고가 되지 않도록 설정됨
문장수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택시 운전사” 1200백만 관객의 의미 (2017-09-04 16:36:06)
안원태의 세상보기, 대통령 박근혜의 죄와 벌 (2017-03-10 14:44:29)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