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문 장 수
(수필가, 공학박사, 기술사)
2016년 서울의 텃밭경작 인구는 무려 100만 명에 달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산업기술이 급성장하게 됨에 따라 흙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점 더 심신이 병약해지고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아들에게 “남새밭 가꾸는 법”을 일러준다. “남새밭은 땅을 반반하게 고르고 이랑을 바르게 하는 일이 중요하며, 흙을 가늘게 부수고 깊게 갈아 분가루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씨는 항상 고르게 뿌리고 모종은 아주 성기게 해야 한다.”등은 지금도 텃밭 가꾸기의 교본이 되고 있다.
주말농장 등 도시농업은 흙을 밟고 만지며, 씨 뿌려 가꾸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즐거움을 준다. 또한 농작물과 교감하며 오감을 자극하여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건강이 좋아지고, 가족 간의 행복지수도 높아져 마음까지 치유한다.
시골에서 낳고 자란 탓인지 나에게는 서울에 살면서도 농사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다. 내가 처음 텃밭농사를 시작한 것은 아내의 주선으로 수서 재개발지역 공터에서 부터이다. 여기에 한 두럭 10여 평을 10만원에 임대하여 농작물을 심고 가꿨다. 잡초만 뽑는 데도 몸이 뻐근하다. 땀 흘린 보람이 있었지만 공사가 진행되면서 다른 곳에 텃밭을 알아봐야만 했다.
이번에는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분당지역인데 아내가 아는 지인의 농지에 농작물을 심었다. 60여 평 정도로 땅이 좀 넉넉하여 농작물의 가지 수를 늘려 심고, 잡초 자람 방지를 위해 비닐로 흙을 덮기도 했다. 주말마다 바쁘게 다녔고, 그런대로 고추와 옥수수 등 소득이 있어 생각보다 좋았다. 2년을 하고 나서 주인에게 땅을 돌려줘야 했다.
다음은 내 친구소개로 남한산성에 있는 50여 평의 텃밭은 토양이 좋아서 농작물을 더 다양하게 길렀다. 밭이랑을 만들고, 비닐 씌우고, 잡초 뽑는 일들이 주말에만 하다 보니 몸살 나기 일쑤이다. 아내는 틈나는 대로 둘레길 산보겸 텃밭에 들려 잔손질을 한다. 2년간은 너무 바쁘게 새벽 출근길에 들려 야채 등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이럴 때이면 넉넉해서 마음이 뿌듯해진다. 씨뿌려 가꾸는 이들의 느낌이 아마 이런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뒤로 다시 하남과 인천에 있는 텃밭이 각각 10여 평 남짓한 곳에 터를 잡았다. 이제 나도 텃밭농사를 시작한지 8여 년이 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텃밭농부가 된 것 같은데 열심하지 않아서인지 여전이 아직도 초보상태이다.
텃밭에 뿌린 씨앗에서 연한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종종 솎아주어야 한다. 솎아 낸 야채새싹에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만든 비빔밥은 별미이다. 들께 잎은 생으로, 익혀서 여러 가지 요리에 적합하다. 부추는 한번 심어놓고 적당한 크기로 자랐을 때 베어내고 그 위에 퇴비를 한 줌 뿌려주면 금방 다시 올라온다. 생명을 담고 있는 씨앗의 위대함을 알고 재배 후 얻는 수확하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초보 텃밭농부들이 즐겨 재배하는 것은 상추, 배추, 열무우, 고추, 가지, 옥수수, 호박, 들깨 등이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진드기는 배추, 케일 등을 2~3일내에 초토화 한다. 고추는 장마철에 고추역병으로 수일 내에 짓물러져서 망치게 되기 때문에 10회 이상 농약을 해야만 한다.
아무리 좋은 땅도 계속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황폐화되기 쉽고 잡초가 우거져 가시덤불 밭으로 변하고 만다. 잡초는 1주일에 한 두 번씩 뽑아줘야 한다. 한번이라도 거르게 되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왕성하게 자라서 매우 힘들어진다.
이렇게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야 병충해에도 강하고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땅이 된다. 그래서 “농작물은 주인의 땅 밟는 발자국 소리를 알아본다.”라고 한다. 보약은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채소도 정성이라는 보약을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체험하게 된다. 흙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땀과 정성이 깃든 만큼을 되돌려 준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농사짓는 일을 자식농사라고 하는가 싶다.
차를 운전하고 가는 텃밭농사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을 경제적 가치만으로 비교하면 적자이다. 그러나 노동, 수확의 기쁨, 생명력을 가지고 자라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건강 등 비용편익적인 면을 고려하면 분명 흑자경영이라 할 수 있다. 텃밭 가꾸기는 자녀들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정신 건강을 함양할 수 있는 여가 생활이기에 얻어지는 이점은 비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텃밭농사는 정신건강을 위한 최고의 힐링 공간이자 만병통치약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농작물이 서로 어울려 사는 법과 뿌린 만큼 거두고, 땀 흘린 만큼 되돌려 주는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얻는다. 우리 사는 세상은 서로 다른 인격과 성향을 가진 존재들이 관계를 맺고 함께 더불어 살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우리가 어울려 사는 방편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전통과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간다. 이처럼 삶의 존재와 만남의 관계는 공존이라는 사회자산이며 가치임을 새삼 느껴 본다. |
